공연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공연 후기 (말러 교향곡 9번)

사재기 2011. 11. 17. 20:32




1.
우리 회사 주특기랄까... 일 몰아주기.
10월 초 부터 시작된 초과근무와 주말근무가 슬슬 불길한 예감을 갖게 하더니
급기야 10월말에 진행된 회의에서 11월 5일 부터 18일까지 공사일정이 잡혔다.

회의 끝나자 마자 근태계를 제출했다. 11월 15일, 16일은 연차쓰겠다고.
공사일정 잡혔는데 뭐냐. 서울 갈 일이 있다. 6월 부터 계획한거다. 이번엔 곧 죽어도 가야 한다.
곧 죽어도 가야 하는 일이 뭐냐?
공연 관람이다. 으,응???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말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신에겐 취소 수수료라는 무기가 있사옵니다.

이틀 공연 티켓 두 장 90만원의 취소 수수료가 10%인 9만원이다.
(실은 말러 공연만 예매했으니 45만원의 10%인 4만5천원이었지만... -_-;;)
내가 백번 양보해서 이 수수료 회사에서 내주면 연차 안 쓰겠다.

가라. 두말없이 가란다... -_-;;

에라이.



2.
5년만에 가는 공연이다.
중국 주재원 3년, 작년, 올 해 꽉 채웠으니.

서울 올라가는 KTX에서 좀 자려고 했지만 눈만 말똥 말똥하다.
서울역에서 간단한 걸로 저녁 요기를 하고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제기랄 남부터미널 역에서 제대로 내리긴 했는데,
출구 번호를 잘못 찾았다.
안 걸어도 될 걸 15분 이상이나 더 걸었다... 아 발 아파.
겨우 음악당에 도착. 티켓을 찾아야 하는데 로비 중앙이라고??? 아 사람들이 쭈~~~욱 늘어서 있네. 저기구나.
내 앞에 사람이 두 명 남았을때 그게 커피사는 줄이었다는 걸 알았다. 젠장.

신분증 지참하래서 지금 주민등록증, 면허증이 출장중이라... -_-;;
여권까지 가져왔는데 한번 보자는 소리도 없이 내준다. 아놔.
티켓을 받고 나니 바로 옆에 물품 보관소가 보인다.
아 잘됐다. 코트랑 브리프 케이스가 아까부터 무거웠는데.
서울 날씨 갑자기 추워졌다고 누가 그랬냐... ㅡㅡ^

돌아서는데 바로 앞에 임헌정 선생이 계신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이 반응한다.

"안녕하세요." 내가 날 생각해도 헐~~~

다행히 자연스럽게 인사를 받아주신다.
아마 이런 일 자주 있으신가 보다... -_-;;

오늘 공연 인터미션없이 쭉 간다길래
미리 화장실 다녀오니 종이 울린다. 공연장으로 입장하고 나서
입구에서 무대쪽으로 사진 한 장만 찍어야지 했는데,
아뿔싸 브리프 케이스... orz
뭐 좋게 생각하면 공연중에 내 핸드폰이 울릴 일은 아예 없겠구나... ㅡ,.ㅡ




3.
내 자리를 찾아갔는데
아놔 이런 무대가 코 앞, 포디움이 눈 앞.
가까워도 너무 가깝... -_-;; 선택의 여지도 없었지만 대략 5, 6번줄이었어야 딱인데.

별 다른 지연없이 단원들이 무대로 나오고 악장이 올라오고 튜닝을 하고,
드디어 래틀 경 등장.

연주 시작이다.



4.
4악장 도입의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의 템포가 어긋난 것을 제외하면
(적어도 내가 듣기엔, 그게 새로운 곡 해석때문이었다면 그 해석 난 반댈세... -_-;;)

실내악을 능가하는 앙상블과 4악장의 예의 피아니시시모 부분은 정교함의 극치라는 말 이외엔 표현할 길이 없음!!!
그리고 완전히 연주에 몰입해 있던 비올라 수석의 연주, 특히 4악장의 솔로 파트가 참 좋았었다.

관 역시 정말 세계 최고의 수준이란 걸 실감케 해줬고 특히나 마이어의 오보에와 블라우의 플룻은 이 날 연주의 백미.
스테판 도르의 호른은 쩌렁 쩌렁하게 울리는 맛은 최고였지만 소리가 과하다 라는 느낌이었고
더불어 섬세함은 떨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일정을 감안하면 무리도 아니지만 중간계에서 인간계로 내려온 듯한 느낌을 줘서 오히려 좋았... -_-;;

8대의 베이스가 보내주는 저음부 또한 묵직하게 다가오는 맛이 일품이었고
팀파니가 소리가 좀 퍼지는 느낌이었는데 이건 홀 특성인지 실제 팀파니가 그랬는지는 확인할 길이.



래틀 경은 한마디로 열정적이더라.
1악장 중반부가 지나기도 전에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을 번갈아 볼 때 (지휘자를 기준으로 양쪽으로 배치됐었음)
이마에 벌써 땀이 흥건하다. 하긴 몸을 그렇게 움직이는데 땀이 안 나는게 오히려 이상하지.
게다가 말도 많으시다. 뭐라는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자주 웅얼 웅얼 거리신다.

그리고 해석적으로는... 다른 건 제쳐두더라도... 루바토가 심하시다.


완벽했다고 할 순 없지만 베를린 필과 래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연주였었다.

그리고 끝까지 마음 한구석에 불안하게 남아있던 안다박수가 나오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흔히 침묵악장이라 불리는 휴지부가 끝나고 래틀 경이 신호(응?)를 주자 그제야 나오는 박수소리.
미미한 잡음이 조금 있긴 했지만 그 아름다웠던 4악장을 아름답게 마무리해준 관객들이 고마웠다.



5.
앵콜은 없었다.
솔직히 다행이었다. KTX 시간 맞춰 서울역 갈려면 안해주는게 도와주는거다... -_-;;

뒷쪽의 관객이 어느 정도 빠졌겠거니 하고 일어서 뒤돌아 보니
헉... 미샤 마이스키가 관객에게 싸인을 해주고 있다.

알고보니 시드니 심포니 공연 때문에 내한했다가 관람 온 모양이다.
아쉬케나지와 키신도 왔었다는데 보진 못했다.



6.
맨 앞 자리다 보니 별게 다 보였는데
래틀 경의 연미복 오른쪽 허리춤에 나와 있던 올 하나와
왼쪽 허리춤에 붙어서 끝까지 붙어있던 머리카락 한 올.
공연 내내 신경쓰였었다능... -_-;;

무대보다 자리가 낮다 보니 올려다보는 꼴이 됐는데 이게 3악장 때 부터는 어깨가 결리기 시작... -_-;;
3악장 때는 좀 움직이기가 수월했는데 4악장 같은 경우 후반으로 갈수록 참으로 난감.
조그마한 움직임도 눈치 보이고 괜한 소리가 날 수도 있고.
 
앞으론 맨 앞 자리는 웬만하면 사절... -_-;;



7.
유명 오케스트라를 데리고 오는데 드는 비용이 한두푼 드는것도 아닐테고
이틀 공연으로 그 비용을 뽑아낼수도 없을테니 기업협찬이 필수일테지만
이 공연이 삼성전자 협찬이었다는 걸 공연장 가서 알았... -_-;;

걍 좀 씁쓸하다능.

예당 공연은 덜했는데 세종 공연은 공연장 앞 버스정류장에 사열한 삼성 쪽 VIP들 에쿠스들 땜에
공연 직후 아수라장이 되었다는 후문이.



8.
나도 나름 VIP(응?)였는데 공연 프로그램 걍 하나 주면 안 되냐?
만원이나 받고... 사진 안 많았음 비뚤어질뻔 했어... -_-;;



9.

당일치기 서울 공연 관람이 아무래도 힘에 부칠 것 같아 이틀 연차 낸 거 였는데
이게 탁월한 선택이었다능. 16일은 하루 종일 쿨쿨... ㅡ,.ㅡ
물론 주말도 없이 연일 과중한 업무 탓도 있었겠지만.



공연 끝나고 브리프 케이스 찾은 후-_-;; 사진 한 장.

오른쪽 기둥에 가려진 쪽에 사진 부스가 있었는데 혼자간 터라... 패스.
지나가는 처자 붙잡고 한 장 찍어달랠 수도 없는 노릇이니... -_-;; 그럴 걸 그랬나... ㅡㅡa





만원이나 받던 공연 프로그램.





끼워주던 찌라시.
어케 협찬 기업 이름이 오케스트라 이름보다 먼저 나오고 폰트 크기도 같냐고... -_-;;





프로그램이랑 찌라시랑 같이 한 장.





공연 티켓.





경남 도민이 이번 서울 나들이(응?)에서 신기했던 거 하나... -_-;;
지하철 승차권이 이렇게 바뀌었더만. 여러모로 괜찮은 아이디어 같다능.

물론 나는 보증금 환급 안 받고, 제조 단가가 보증금보단 훨씬 싸겠네 라는 변명으로
기념으로 한 장 꿀꺽... -_-;; 죄송합니다. (__)